2017. 08. 16

엉재



아마도 처음에는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취한 마음으로 이것 저것 무작정 만들어보고 마는 거친 시간들이었다. 나나 일상, 재료보다 내 손이 가장 먼저였던 소란스러운 시간.

그러다 자연스럽게, 다행히도 나, 재료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. 그러니까 내가 가장 기꺼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. 나를 그 안에 은밀히 투영하면서 백자라고 하는 재료의 성격을 끄집어 내는 일을 내 역할로 자진하는 것. 그렇게 내 작업물을 접하는 분들이 백자에 관한 감상을 확대할 수 있고, 그것을 통해 삶에 작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게 지금 나의 관심사이다.

나는 그것을 백색음유(白色吟遊)라고 말한다. 말 그대로 내 작업의 과정과 결과물이 백색이란 언어로 한 편의 시를 지어 읊는 여정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. 우리가 시를 통해 무심히 지나치던 순간과 고정된 단어를 다시 되돌아보며 새롭게 인식하고 무한히 확장시키는 경험을 하듯 내가 백자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바라본 것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.

이번 여름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시 중 하나인 신대철 시인의 '박꽃'에서 나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강한 집중력과 깊이의 고독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떤 장막을 걷어낸 새로운 경험의 순간을 본다. 새로운 공간, 첫 글 마지막에 그 시를 적고 싶다.


박 꽃

신대철

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

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

벌떼 같은 사람은 잠들고

침을 감춘 채

뜬소문도 잠들고

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

박 꽃이 핀다

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.

 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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